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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링컨의 역사

모비티 2017. 4. 5.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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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기아 대우 국내 브랜드는 역사는 당연히 많이 이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벤츠, BMW, 아우디, 포르쉐,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해외 유명한 브랜드에 대해서는 차덕후라면 누구나 아는 브랜드이며 그역사 또한 깊게는 아니더라도 약간은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자동차 브랜드인 포드 또한 약간은 알고 있지만 링컨에 대한 브랜드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요?? 오늘은 아메리칸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링컨의 역사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링컨의 시작

링컨을 처음 만든 이는 윌리엄 듀란트와 GM을 공동설립한 헨리 리랜드(Henly Leland)로 자동차 부품회사로 캐딜락을 설립해 온 헨리 리랜드는 윌리엄 듀란트와 함께 GM 그룹을 설립 했습니다. 1915년 이들은 V8 엔진을 개발하여 실용화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리랜드는 1차 세계 대전 당시 항공기 엔진을 설립해 군수업체로 변신을 도모했으나 비행기 엔진 제작을 원하던 리랜드와 자동차만 고집한 듀란트의 대립으로 결국 리랜드가 캐딜락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리랜드는 자동차 엔진을 다시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링컨 대통령의 이름을 따 1917년 링컨 자동차 회사(Lincoln Motor Company)를 정식 설립 했습니다. 리랜드는 1922년 포드에 링컨 브랜드가 편입된 후 줄곧 포드의 럭셔리카 개발을 담당 했습니다.


최초의 링컨 컨티넨탈

링컨의 대표 브랜드인 링컨 컨티넨탈(Continental)은 당시 포드 CEO 에드셀 포드가 1938년 파리 여행 중 유럽차들을 보며 받았던 느낌을 그대로 반영하여 자신이 타고 다닐 차로 링컨 컨티넨탈을 제작하였으나 이를 본 부위의 반응이 너무 좋아 양산을 결정하여 제작된 자동차 입니다.


1920년대 프리미엄 아메리칸 럭셔리카로 자리 잡은 링컨

1920년대 링컨은 프리미엄 아메리칸 럭셔리 카로 독자적 입지를 굳혔습니다. 포드의 주문 제작 차량 중 가장 유명한 모델은 아들 에드셀 포드가 아버지 헨리 포드를 위해 만든 1922년 링컨 타운카 입니다.

타운카의 이름은 운전석이 외부에 노출되어 있고 승객석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차체 디자인에서 따왔습니다. 링컨 타운카는 자동차를 교통수단이 아닌 고귀한 지위의 상징으로 한 단계 끌어 올렸으며 토마스 에디슨, W.C 필즈, 허버트 후퍼와 같은 저명 인사들이 링컨을 애용했습니다.


1930년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차로 찬사

1930년대에 이미 링컨은 럭셔리한 고급 승용차로 아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링컨 제퍼 출시로 재정적 큰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제퍼 이후 링컨은 럭셔리하고 명성 높은 고급 자동차로 알려지기 시작 했습니다. 제퍼는 유선형 라인을 가진 공기역학적인 디자인의 시작이었습니다


헨리 포드의 아들 에드셀 포드는 1938년경 신차 링컨 컨티넨탈을 출시하기로 결정하고 신차 개발 진두지휘 하여 고객들로 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링컨 컨티넨탈은 깔끔하게 떨어지는 디자인과 다이내믹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 냈습니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링컨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차’라 불렀으며 뉴욕 모던 아트 뮤지엄 역시 ‘탁월한 디자인의 차로 칭한 번째 자동차 브랜드’로 링컨을 꼽았습니다.


1940년대 전쟁 영향으로 인한 디자인 변화모색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탱크 엔진, 수륙양용 차량 바디 14만대의 지프 바디의 제작을 위해 모든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었습니다. 이 미국에서 출시된 대부분의 차들과 마찬가지로 링컨 역시 전쟁 전의 디자인을 리스타일링된 모델들을 출시했습니다.


1950년대 큰 변화를 추구한 링컨

1950년대는 링컨에게 큰 변화의 시대 였습니다. 파워 스티어링, 파워 브레이크, 파워 윈도우, 광각 유리, 튜브가 없는 타이어, 자동 시트 등 옵션이 링컨 프리미어에 장착되기 시작했습니다. 링컨의 디자인 또한 미래지향적으로 변신했으며 컨티넨탈 마크 II 링컨의 새로운 스타일 룩을 만들어냈습니다. 당시 링컨은 세기에서 가장 아름답고 영향력 있는 자동차로 평가되었습니다.


1960년대 뉴 컨티넨탈로 '올해의 디자인 상' 수상한 최초의 자동차

1961년까지  컨티넨탈은 새로운 이상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당시의 화려함과 대조적으로 컨티넨탈은 심플함과 정교함에 초점을 두어 디자인 되었습니다. 1961년의 컨티넨탈은 가운데에서 문이 열리는 코치도어 방식으로 하드탑 또는 컨버터블 모델이 있었습니다. 1939 원조 컨티넨탈과 마찬가지로 컨티넨탈은 링컨의 이미지를 한꺼번에 바꿔놓았습니다.  컨티넨탈은 명성 높은 미국 산업디자인협회에서 올해의 디자인 상을 받은 최초의 자동차가 되었습니다.


1970년대 구찌, 베르사체 등 유명 디자이너의 러브콜

1970년대의 링컨은 60년대의 트랜드와 반대로 다시 넓어지고 럭셔리 해 졌습니다. 링컨 마크 IV 쿠페는 70년대 젊은 부유층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1974 링컨 최초로 자동차 유리 서리방지 시스템을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지방시, 구찌, 까르띠에, 블라스 유명디자이너의 패션 트렌드를 도입하여 링컨에 명품 마크를 새겨 넣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링컨의 획기적인 변화

1980년대에 링컨은 획기적인 변화를 맞게 되었습니다. 1984 마크 VII 개인용 럭셔리 쿠페 부문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으며 컨티넨탈은 링컨 최초의 전륜구동차로 주목을 받았다. 타운카를 비롯하여 나머지 모델들이 계속 성공하여 링컨은 280,659 판매 대수를 기록하며 자동차 분야의 선두주자가 됐었습니다.


1990년대 마크VIII 출시로 왕좌석권

1990년대에는 일본과 영국의 브랜드 자동차 시장으로 들어와 미국의 제조업체와의 경쟁을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도 링컨은 항상 최고의 자리를 유지할 있었습니다. 1990년형 타운카는 모터트렌드의 “올해의 차”로 선정되었고, 드라마틱한 외관과 운전자 중심의 인테리어를 갖춘 마크 VIII 출시하며  한번 최고의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1998 최초의 사이즈 울트라 럭셔리 LUV 내비게이터를 출시했으며 전통적인 링컨의 특성을 살린 웅장하고 럭셔리함으로 내비게이터는 ‘도로의 (King-of the-Road)’으로 불리며 젊은 층으로부터 인기를 얻었습니다.


미국 전통 럭셔리 브랜드 링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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